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르첼로 리피 (문단 편집) === [[유벤투스 FC|유벤투스]] 1기 ===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215E9C3C534001891ECFC50.jpg|width=100%]]}}} || 1992-1993 시즌 [[아탈란타 BC]], 1993-1994 시즌 [[SSC 나폴리]]를 이끌면서 뛰어난 리더십을 검증받으며 반도에 서서히 유명세를 올려가던 리피에게 1994년 여름, 이탈리아 최고 명문 구단인 [[유벤투스 FC|유벤투스]]가 러브콜을 보낸다. 당시 유벤투스는 이미 [[조반니 트라파토니]]라는 세계 최고의 명장이 팀을 이끌고 있었다. 트라파토니는 유벤투스의 찬란했던 70~80년대 황금기를 이끌다가 1985-86 시즌을 끝으로 떠났지만 6년 뒤에 팀이 부진에 빠지자 다시 감독직에 복귀한 상태였다. 그러나 그가 복귀했음에도 유벤투스는 [[AC 밀란]]에 밀려 70~80년대에 비해 다소 초라한 90년대를 보내고 있었다. 옆동내 AC 밀란의 [[파비오 카펠로]]처럼 젊고 열정적인 감독을 원했던 유베에게 리피는 안성맞춤이었던 셈이다.[* 구단 내에서 트라파토니를 경질하고 신임 감독으로 리피를 임명한 것 이외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난다. 움베르토 아넬리 회장에 의해 구단 보드진 주요 인사 부분에 전면 개각이 일어난 것. 구단 레전드 출신으로 부회장에 임명된 '''[[로베르토 베테가]]''', 전무 이사로 구단의 경제 및 재무 관리를 맡게 되는 '''안토니오 지라우도''', 그리고 단장으로서 선수 영입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90년대 유벤투스가 세계적인 거대 구단으로 발돋움하게 한 지대한 공을 세웠지만 훗날 유벤투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축구계 전체를 몰락의 길로 빠트리게 하는 인물, '''[[루치아노 모지]]'''가 새로 영입된다. '''베테가-지라우도-모지''' 이 세명의 경영진은 이탈리아 내에서 소위 '''Triade(삼인조)''', '''마피아 트리오''' 등으로 불리우며 2006년 [[칼치오폴리]]가 터지기 전까지 12년 동안 구단의 핵심 실세로 군림하게 된다.] 부임 첫시즌인 1994-95 시즌, [[조반니 트라파토니|트라파토니]] 감독에게 물려 받은 기존 스쿼드에서 [[안드레아스 묄러]], [[디노 바조]] 등이 팀을 떠난다. 그리고 리피의 지도 아래 [[SSC 나폴리|나폴리]]에서 활약했던 수비수 [[치로 페라라]], [[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|뢰블레 군단]]의 캡틴이던 [[디디에 데샹]], 포르투갈의 홀딩 미드필더 [[파울루 소자]] 등이 새로 영입된다. 또한 이 시기부터 세계적인 스타 선수인 [[로베르토 바조]]가 부상으로 인해 기량이 저물기 시작하고 [[알레산드로 델피에로|델피에로]]가 유스에서 1군으로 콜업되어 리피 감독의 지도 하에 본격적으로 중용받기 시작한다. 전술 또한, 바죠와 라바넬리의 투톱 아래 묄러가 뒤를 받치는 기존의 4-3-1-2에서 탈피하여 델피에로를 적극 활용한 '''델피에로-비알리-라바넬리'''가 쓰리톱을 이룬 공격적인 4-3-3을 가동시킨다. 리피 부임 당시 [[세리에 A]]는 그야말로 [[AC 밀란]]의 천하. [[파비오 카펠로]] 감독이 이끌고 있었고 스쿠데토 4연패에 도전하는 최강의 팀이었다. 그러나 새 시즌이 시작되고 밀란은 [[마르코 반 바스텐]]의 부재 속에서 공격력 미흡과 수비진 노쇠화 등으로 인해 부진하면서 결국 리그 4위에 그치게 된다. 리피는 2위 [[SS 라치오|라치오]]를 무려 승점 10점차로 따돌리고 9년만에 유벤투스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기나긴 [[밀란 제너레이션]] 시대의 종식을 선언하고 [[코파 이탈리아]] 결승에서도 [[SSD 파르마 칼치오 1913|파르마]]를 상대로 승리하며 부임 첫시즌에 '''더블'''이라는 괄목할 만한 업적을 세우게 된다. 이 시즌 [[UEFA 유로파 리그|UEFA컵]]에서도 선전하여 결승 무대까지 진출한다. 그러나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서 상대했던 파르마를 또 다시 만나는데 1, 2차전 합계 2:1로 패하면서 '''미니 트레블''' 달성에는 실패한다.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baggio_05_672-458_resize.jpg|width=100%]]}}} || || {{{#000000 '''[[판타지스타]] [[로베르토 바조]]와 함께''' }}} || 2년차인 1995-96 시즌에는 이전 시즌만큼은 아니지만 큰 선수 변화가 있었다. 세계 최고의 스토퍼 [[위르겐 콜러]]가 [[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|도르트문트]]로 떠나고 대체자로 [[UC 삼프도리아|삼프도리아]]로부터 [[피에트로 비에르코보드]], [[블라디미르 유고비치]]를 영입하였다. 삼프도리아에서 12시즌을 뛴 레전드 비에르코보드는 [[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|이탈리아 대표팀]]에서도 이미 45경기를 출장한 바 있는 베테랑이었다. 트레콰르티스타와 메짤라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[[블라디미르 유고비치]] 또한 [[FK 츠르베나 즈베즈다]]에서 [[UEFA 챔피언스 리그|챔피언스 리그]]에서 우승한 바 있었다. 또한 부실했던 왼쪽 풀백 자원을 매우기 위해 [[잔루카 페소토]]가 영입된다. 그리고 유벤투스에서 5년간 활약한 슈퍼 스타 [[로베르토 바조]]가 라이벌 [[AC 밀란]]으로 떠난다. 리피 부임 2년차를 맞는 이 시즌에는 치열한 우승 다툼 끝에 스쿠데토를 다시 [[AC 밀란|밀란]]에게 내주게 되지만 [[UEFA 챔피언스 리그|챔피언스 리그]]에서는 8강에서 [[레알 마드리드 CF|레알 마드리드]], 4강에서 [[FC 낭트]]를 차례로 꺾으며 결승에 진출한다. [[스타디오 올림피코]]에서 열린 결승전에서는 [[루이 판할]]이 이끄는 디펜딩 챔피언 [[AFC 아약스|아약스]]를 상대하는데 전반 13분만에 유벤투스의 측면 공격수 [[파브리치오 라바넬리]]가 선취 골을 기록하지만 41분경 [[야리 리트마넨]]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결국 더는 득점없이 연장전을 지나 승부차기에 돌입한다. 유벤투스의 골키퍼 [[안젤로 페루치]]가 [[에드가 다비즈]], 소니 실루이의 슈팅 2개를 막아내는 맹활약 끝에 결국 승리하며 11년만에 유럽 정상의 자리에 오른다. 유벤투스 역사상 두번째 빅 이어이자 리피의 처음이자 마지막 챔피언스 리그 우승 트로피였다.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ML-1024x683.jpg|width=100%]]}}} || || {{{#000000 '''1995-1996 챔피언스 리그 우승 당시''' }}} || 3년차 1996-97 시즌, [[알레산드로 델피에로|델피에로]]와 함께 유벤투스의 이탈리안 쓰리톱을 구성했던 [[잔루카 비알리]], 파브리치오 라바넬리가 팀을 떠난다. 공격진 대체가 불가피했는데 [[아탈란타 BC|아탈란타]]의 신성 [[크리스티안 비에리]], [[SS 라치오|라치오]]의 [[알렌 복시치]]를 영입하고 프랑스의 [[지롱댕 보르도]]로부터 [[지네딘 지단]]을 단돈 320만 유로에 영입한다. 거기다 한시즌만에 팀을 떠난 노장 수비수 피에트로 비에르코우드의 공백을 매우기 위해 거친 플레이로 유명했던 [[파올로 몬테로]], 마크 율리아노를 영입하기에 이른다. 이렇게 새 시즌을 앞두고 대대적인 팀 개편을 하게 되고 이후 유베는 본격적인 유럽 최정상급 클럽 궤도에 오르게 된다. 사실 그 이전 시즌까지는 리피가 영입한 선수들도 있지만 [[조반니 트라파토니|트라파토니]] 감독의 색채가 많이 남아 있었다. 하지만 1996-97 시즌 이후로는 본격적인 리피의 색채를 갖춘 리피 유베 시대가 시작되었다. 측면 공격수를 담당했던 라바넬리의 이탈로 인해 더이상 쓰리톱 전술을 기용할 필요가 없어진 리피는 다시금 팀의 전술을 4-3-1-2로 회귀시켰고, 전술의 핵심인 '''1'''자리에는 지단을 기용하여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경기 지배력을 얻게 된다. 지난 시즌 빅이어를 들어올렸던 캡틴 [[잔루카 비알리]]의 이적으로 신임 주장은 [[안토니오 콘테]]가 임명된다. 시즌 개막과 함께 [[UEFA 슈퍼컵]] 우승으로 쾌조의 스타트를 보인 유벤투스는 [[세리에 A]] 전반기를 1위로 마치고 연말에는 일본에서 개최된 [[인터컨티넨탈컵|도요타 컵]]까지 우승하며 승승장구한다. 시즌 말미, 2년만에 다시 스쿠데토를 되찾아 오게 되고, [[UEFA 챔피언스 리그|챔피언스 리그]]에서도 2년 연속 결승에 진출하기에 이른다. 하지만 [[UEFA 챔피언스 리그/1996-97 시즌/결승전|결승전]]에서는 [[오트마어 히츠펠트]] 감독이 이끄는 [[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|도르트문트]]에게 패배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.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3f61d.jpg|width=100%]]}}} || || {{{#000000 '''1996년에 영입된 [[지네딘 지단]]과 함께''' }}} || 여담으로 [[지네딘 지단|지단]]과는 한 일화가 있다. 이탈리아 기자 루카 카오오리의 저서 <지단, 영광까지 10분>에 따르면, 리피 감독은 지단이 이적 초기에 저조한 활약을 보여 주변의 혹독한 비판에 시달리고 있을 때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옹호했다고 한다. 리피는 여러 포지션에 지단을 기용하며 최적의 위치를 찾아주기 위해 노력했다. 훗날 지단은 본인의 선수 인생 최고의 감독으로 리피를 꼽았다. 리피의 4년차인 1997-98 시즌, 비에리와 복시치가 한시즌만에 유베를 떠나자, 전 시즌 [[세리에 A]] 득점왕 [[필리포 인자기]]를 1,040만 유로에 영입하며 공격진 강화를 한다. 시즌 중반에는 [[AC 밀란]]으로부터 네덜란드 출신 '''싸움닭''' [[에드가 다비즈]]를 850만 유로에 영입했다. 1997-98 시즌 리피의 유벤투스는 그 이전 시즌들의 페이스를 모두 웃돌며 질주했는데 그 위상은 가히 전 유럽에서도 적수가 없어 보였다. 이탈리아 내에서 그나마 대항마로 꼽을 수 있던 팀은 [[호나우두]]와 [[알바로 레코바]]를 영입한 [[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|인터 밀란]] 정도였다. 이 시즌에는 [[알레산드로 델피에로|델피에로]]의 활약 또한 눈부셨는데, [[세리에 A]]에서만 21골을 득점하였고 [[UEFA 챔피언스 리그|챔피언스 리그]]에서는 10골을 넣어 득점왕에 오르는 등 본인의 선수 인생 최고의 시즌을 보낸다. [[호나우두]]와의 라이벌 구도 또한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. 결국 유베는 인테르와의 치열한 우승 다툼 끝에 스쿠데토 2연패를 달성하는데 성공한다. [[UEFA 챔피언스 리그|챔피언스 리그]]에서도 95-96, 96-97 시즌에 이어 무려 3년 연속으로 결승에 진출한다. 그러나 [[레알 마드리드 CF|레알 마드리드]]를 상대로 확실한 우세가 점쳐졌던 결승전에서 경기 도중 델피에로가 상대 수비수 [[페르난도 이에로]]의 살인 태클로 인해 부상을 입게 되고[* 이에로의 이 태클로 인한 부상은 훗날 [[1998 FIFA 월드컵 프랑스|1998 월드컵]] 뿐만 아니라 델피에로의 선수 생활 전체에 있어서 기나긴 슬럼프를 초래하는 큰 악재가 되고 만다.] 공격력 부재 속에서 프레드락 미야토비치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허용하여 전시즌에 이어 또다시 결승전에서 고배를 마셨다. 그 다음 1998-99 시즌은 리피의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. 측면 수비수 모레노 토리첼리의 대체자로 이고르 투도르가 영입된 것을 제외하면 전 시즌의 선수단을 그대로 유지한 채 시즌에 돌입했다. 그러나 5년차에 접어든 리피의 팀은 [[1998 FIFA 월드컵 프랑스|1998 월드컵]]의 후유증으로 인해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지며 순위도 추락했다. 팀의 에이스 [[알레산드로 델피에로|델피에로]]의 부상 악재에 이어 겨울 이적시장에서 새로 영입한 유망주 [[티에리 앙리]]도 적응에 실패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결국 유벤투스는 우승권 밖으로 밀려난다. 1999년 2월경, 리피는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시즌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감독직에서 사임하였다. 후임 감독으로는 [[카를로 안첼로티]]가 임명된다.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mgak8xf7v91r30r4xo2_250.gif|width=100%]]}}} || || {{{#000000 '''1997-98 시즌, 경기 도중 주장 콘테에게 지시를 내리는 리피''' }}} ||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Antonio-Conte-Marcello-Lippi-manager-crushes-e1475065092889.jpg|width=100%]]}}} || || {{{#000000 '''2016년 5월 21일에 있었던 유벤투스와 밀란의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을 함께 관전''' }}} || 과거 [[첼시 FC|첼시]]의 지휘봉을 잡았던 [[안토니오 콘테]] 감독이 현역 시절 유벤투스에서 뛰면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감독이 리피이다. 콘테는 리피를 비롯한 명장들의 지도는 훗날 자신이 감독이 될 수 있게 한 최고의 수업이었다고 회고했다. 당시 콘테는 전술이나 시스템 등과 관련된 사항에 있어서 리피 감독에게 가장 많은 의견을 내며 소통을 하는 선수였고 리피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유벤투스에서 주장으로 뛰었다.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1997 lippiferguson.jpg|width=100%]]}}} || || {{{#000000 '''1997-1998 시즌 조별 예선 2차전, 올드 트래포드에서 맨유가 3:2로 승리한 경기가 끝난 후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함께''' }}} || 2000년대에 [[주제 무리뉴]]가 등장하기 이전에 [[알렉스 퍼거슨]] 감독과 가장 처음으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감독이 리피이다. 1990년대 후반, 리피가 이끌던 유벤투스는 유럽 무대에서 [[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|맨유]]와 많이 부딪쳤다. 퍼거슨 감독은 당시 맨유 선수들에게 유럽 최강이던 유벤투스의 플레이 영상을 자주 보여주며 승리를 위한 갈망을 주입시켰다고 한다. 리피의 유벤투스와 퍼거슨의 맨유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1996-97, 1997-98, 1998-99[* 98-99 시즌 준결승에서 두 팀이 만났을때는 유벤투스 감독이 리피가 아닌 안첼로티였다.] 시즌까지 3시즌 연속으로 만났고 총 전적 3승 1무 2패로 유벤투스가 우세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